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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파도

파도 1       파도는 곡선으로 오지만   때로는 직선으로도 온다   직선으로 와서 내 몸을 밀어   모래알처럼 쓸어 내기도 하고   자갈처럼 울음을 터뜨리게도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직선을 이루며 하나가 되었다. 호수에 가득한 파도가 멀리서 밀려오고 있다. 손짓하듯 잔잔한 거품을 물고 해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눈길을 고정하고 파도의 이동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파도의 물결이 생겨나고 어느 사이 서 있는 발밑까지 적시며 세차게 밀려오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 앞에 서면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높은 나무 위에 여러 마리의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며 하루를 즐거이 맞이하고 있다. 멀리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어디에서 오는지 여러 마리의 새 떼가 함께 모여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지난밤 거칠게 퍼부었던 비와 간간이 번뜩였던 섬광과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파도와 함께 시간의 조각들이 흩어진다. 그 조각들은 윤슬이 되어 호수의 표면에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고 있다.   도대체 이 호수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누가 이처럼 충만한 물결을 물려 오게 했을까? 지난밤 퍼붓던 빗물이 호수의 수위를 높인 탓인지 거세게 모래가 밀려오고, 또 쓸어내리고 있다. 굵은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파도의 울음소리같이 들린다. 만물이 주로부터 지어져 다시 지은이에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수천수만 년 전 아니 이 땅이 지어지고 이 우주가 지어질 때 까마득한 창세로부터 밀려오고 밀려갔던 파도가 오늘 이렇게 같은 모양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약한 것, 연약한 것만을 바라보며 실망하고 좌절했던 우리의 모습.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 아닌가. 파도를 보라. 그의 평생 잊지 못할 몸짓을 보라. 밀려오는 당당한 그의 허리를 보라. 눈을 들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든 풍경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어제가 아니고 오늘이다. 우리의 삶에서 끝이라는 개념은 지워져야 한다. 지금까지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서 꼭 마지막 날이 될 것만 같은 어둠의 밤이 지났다. 아직 남은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동이 트고 있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직선의 화살을 쏘아 내리고 있다. 어둠을 뚫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본다. 어둡던 마음에 문이 열리고 다시 먼동이 트고 새날이 밝아 오고 있다. 지난밤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고 조금의 빈틈도 없이 시계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듯 호수는 제 자리를 찾았다. 새날이 밝아 오면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호수, 새로운 파도가 몰려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모래의 쓸림도, 자갈의 울음도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호수의 사랑은 오늘도 아름답고 또 새롭다. 윤슬이 보석 같이 빛나고 하얀 거품에 물방울이 생명으로 가득 찰 때 내 속 가득 차오르는 감격의 선물을 어찌 감당해 낼까?       파도 2       눈을 피해 살며시 다가오는   너의 손끝을 보고야 말았다   너는 나에게 잊힐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로 가서   평생 잊지 못할 몸짓이 되고싶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파도 미시간 호수 섬광과 하늘 밀어 모래알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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